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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보다]‘신분세탁’ 34년 전 살인범…얼굴로 잡혔다

2021-07-17 1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누군가를 찾는 일은 그만큼 어렵습니다.

찾으려고 하는 이가 작정하고 숨어버렸다면 더욱 힘들어질 겁니다.

자신의 이름과 나이는 물론, '가짜 부모'까지 만들어 신분세탁을 한 남성이 있습니다.

34년 전, 중국에서 2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남성은 한국으로 들어와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완전범죄'라고 자신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남성의 얼굴에 남은 특징은 그가 살인범이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Q1. 평범한 공사장 인부인줄만 알았던 사람이 알고보니 살인범이었다는 거네요?

지난 7일 새벽입니다.

경찰과 인천공항 출입국 직원들이 인천의 한 공사장에서 54살 중국인 팡모 씨를 붙잡았습니다.

1987년, 중국 산둥성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피의자입니다.

주택 신축공사 문제로 같은 마을 주민들과 말다툼을 벌이다가 흉기로 2명을 살해한 혐의로 중국공안에 수배를 받고 있었는데,

범행 34년 만에 한국에서 체포된 겁니다.

[팡모 씨 / 34년 전 살인사건 피의자]
"(우리는 산둥성 옌타이의 경찰입니다. 당신을 인계받아 가려 합니다. 가는동안 우리에게 잘 협조해야 합니다. 좋습니까?)
감사합니다."

Q2. 34년 만이라… 이렇게 오랜 기간동안 어떻게 안 잡힐 수 있었던 거죠?

범행 후에 중국 현지에서 숨어살다가 2007년, 한국인으로 귀화한 중국인 여성과 혼인신고를 하고,

2년 뒤, '한국 국민의 배우자' 자격으로 비자를 받아서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입국과정에서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세탁했던 겁니다.

한국에서 12년동안 '70년생 팡모 씨'로 살았던 이 남성은 원래 '67년생 왕○○ 씨'였고요,

입국 당시 서류에 기재한 부모들 또한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가짜'였습니다.

그리고는 줄곧 한국에 살면서 2016년엔 영주권까지 취득했습니다.

Q3. 팡 씨가 신분세탁을 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안 거죠?

DNA 때문입니다.

팡 씨는 2009년 10대였던 아들과 함께 한국에 들어오면서 아들과의 친자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DNA 검사를 받았습니다.

당시 팡 씨와 아들의 DNA는 일치했는데, 중국 공안이 입국 당시 팡 씨가 적어낸 가짜 부모들을 찾아내 최근 팡 씨와의 DNA 대조작업을 벌인 결과, 팡 씨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로 확인된 겁니다.

Q4. 철저히 신분세탁을 해서 한국에 들어왔다는 건데, 팡 씨가 34년 전 살인을 저질렀다는 증거는 뭡니까?

결정적 증거는 팡 씨 얼굴에 남은 특징들이었습니다.

중국 공안은 팡 씨를 핵심 용의자로 파악하고 그의 사진을 보관해 왔는데, 사진 속 20대 모습과 현재 그의 얼굴 사진이 동일하다고 판단한 겁니다.

컴퓨터 대조 결과 98.9%의 싱크로율이 나온 겁니다.

Q5. 사진을 보고 비슷하다, 닮았다 이정도는 얘기할 수 있겠는데, 닮은 정도가 수치화까지 된다고요?

최근에는 컴퓨터에 2개의 사진을 넣고 스캔을 하면 얼굴 골격이나 코의 높이, 눈매의 특징 등을 분석해서 싱크로율이 수치로 나옵니다.

얼굴 특징 분석 시스템이 팡 씨의 과거와 현재 2개의 사진을 분석한 결과 이목구비 형태나 인상이 사실상 일치한다고 결론낸 겁니다.

34년 전에 비해 살이 찌고 머리모양까지 바뀌어 있었지만, 변하지 않은 이목구비와 인상은 그를 살인범으로 지목했습니다.

체포된 팡 씨는 경찰에 범행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Q6. 범행을 저지른지가 30년이 넘었는데, 처벌이 가능할까요?

체포 하루 만인 지난 8일에 중국공안에 인계가 돼서 강제추방됐습니다.

하지만 이미 공소시효가 끝나서 처벌을 못 하는 건 아닌지가 의문으로 남는데,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박범일 / 변호사]
"중국 형법상으로도 공소시효 제도가 있기 때문에 20년의 기간 제한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수사가 진행중에 수사를 피하기 위해서 해외로 도주한 경우에는 기간의 제한이 예외가 됩니다. 중국 형법에 따라서 살인을 저지르고 도주까지 한 만큼 법정 최고형이 나올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우리 경찰도 팡 씨의 신분세탁 사실을 입증할 보다 확실한 물증을 찾고 있는데, 체포 이후에 팡 씨의 DNA를 다시 채취해서 친형제들의 것과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34년 만에 밝혀진 진실,

사건을 보다 최석호 기자였습니다.